축구
[아시안컵 득점왕의 조언]②이태호 "오른쪽 눈이 보이지 않은 지 1년, 아시안컵 득점왕 됐다"
이태호 강동대 감독은 1988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3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에 올랐다. 당시 한국 대표팀은 파죽지세로 결승에 올랐지만 승부차기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시안컵 개막이 10일 앞으로 다가왔다.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59년 만에 우승을 꿈꾸고 있다. 손흥민(토트넘) 기성용(뉴캐슬) 황의조(감바 오사카) 등 최고의 멤버들을 앞세워 '아시아 호랑이'의 위용을 찾겠다는 각오다.지난 59년 동안 실패한 아시안컵 우승. 그중 우승에 가장 가깝게 다가갔던 대회가 1988 카타르 아시안컵이었다.최강의 멤버를 꾸렸다. 황선홍·김주성·변병주·최강희·정해원·황보관·박경훈 등 당대 최고의 선수들이 아시안컵에 나섰다. 이들의 기세에 난적 일본과 이란도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조별리그 2차전에서 일본을 2-0으로 무너뜨렸고, 4차전에서 이란에 3-0 대승을 거뒀다.파죽지세로 결승에 오른 한국, 안타깝게도 사우디아라비아를 넘지 못했다.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3-4로 패배, 준우승에 머물렀다. 당시 득점왕은 황선홍도 김주성도 아닌 '이태호'였다.총 3골로 득점왕에 올랐다. 1차전 UAE전(1-0 승)에서 1골을 넣었고, 4강전 중국전(2-1 승)에서 멀티골을 작렬시키며 한국의 결승행을 이끌었다.젊은 세대에는 낯선 이름이지만 80년대 축구팬들에겐 향수를 자극하는 공격수다. 170cm의 작은 키로 빠르고 화려한 드리블이 전매특허였다. 슛 감각도 빼어나 많은 골을 터뜨렸다. 1983년 대우 로얄즈 창단 멤버로 합류해 1992년까지 181경기 57골을 기록한 전설이었다.대표팀에서도 핵심 공격수였다. 1986 서울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비롯해 1988 서울올림픽·1988 카타르 아시안컵·1990 이탈리아월드컵 등 메이저 대회에 출전하며 이름을 날렸다. A매치 78경기 24골을 자랑한다. 당시 그는 독일 폭격기 게르트 뮐러의 이름을 따 '한국판 뮐러'라 불렸다.현재 그는 강동대 감독으로 후배들을 지도하고 있다. 이 감독은 일간스포츠와의 인터뷰를 통해 UAE 아시안컵에 나서는 후배들을 향해 진심 어린 조언을 던졌다. 또 자신이 해내지 못한 아시안컵 우승을 후배들이 꼭 성취해 달라는 진심도 드러냈다.먼저 그는 1988년의 기억을 떠올렸다.이 감독은 "당시 멤버가 워낙 좋았다. 황선홍·김주성·최강희·박경훈·정해원·변병주 등 너무나 좋은 선수들이 포진해 있었다"며 "좋은 흐름으로 결승까지 갔는데 아쉽게도 사우디아라비아에 승부차기에서 졌다. 우승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정말 이기고 싶었다. 너무나 아쉬웠다"고 말했다. 1988년 대회는 중동의 카타르에서 열렸다. 이 감독은 중동에서의 어려움 역시 기억하고 있다.그는 "중동에서 대회가 열렸다. 동남아에 가서 경기하는 것도 어렵지만 중동은 더욱 어렵다. 기후와 환경 그리고 시차까지 적응하기 어려웠다"며 "특히 중동 텃세가 있었다. 이번 대회도 중동에서 하는데 후배들이 중동이라는 변수를 잘 극복해 줬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벤투호를 향한 선배의 기대감은 크다.이 감독은 "벤투 감독이 새로 와서 팀 분위기가 좋고 치열한 팀 내 경쟁 구도도 잡힌 것 같다. 정신적으로도 강한 모습이 보인다. 그래서 잘할 것 같다"며 "조별리그는 무난히 통과할 것이다. 팀워크가 더 좋아진다면 우승까지 할 수 있다. 우리가 하지 못했던 우승, 꼭 후배들이 시원하게 해 주기를 바란다"고 부탁했다.득점왕 선배가 바라보는 후배 득점왕 후보는 누구일까.이 감독은 "손흥민은 워낙 잘하는 선수다. 2차전 끝나고 오면 팀 분위기가 더 좋아질 것"이라면서도 "나는 특히 황의조에게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 황의조 상승세가 놀랍다. 이 상승세가 이어진다면 한국이 우승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면서 "손흥민과 황의조 두 선수가 좋은 호흡을 보이면서 잘 해낼 것"이라고 응원했다.UAE 아시안컵에서 한국은 C조에 편성돼 필리핀·키르기스스탄·중국과 차례로 조별리그 경기를 치른다. 조별리그 최대 이슈는 중국과의 3차전이다.이 감독은 '중국 킬러'로 유명하다. A매치 중국전 3경기에 나서 4골을 넣었다. 이는 중국전 역대 최다골 1위 기록이다. 이 감독은 '공한증'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1988 카타르 대회에서도 4강 중국전에 2골을 넣으며 2-1 승리를 이끌었다.이 감독은 중국과 만나는 대표팀 후배들에게 "중국이 많은 투자를 했다고 하지만 아직 한국한테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한다. 강한 정신력을 보이면 중국은 절대 한국을 이길 수 없다"며 "후배들이 공한증에 자부심을 가지고 이어 갔으면 좋겠다. 중국 선수들은 한국 선수들을 만나면 언제나 위축이 됐다"고 강조했다.중국 킬러와 함께 이 감독에게는 또 다른 별명이 있다. 바로 '외눈 골잡이'다.그에게는 아픈 이야기다. 1987년 K리그 경기에서 상대 선수 발에 오른쪽 눈을 차였다. 큰 부상이었다. 이후 이 감독의 오른쪽 눈은 보이지 않았다. 치명적인 부상으로 선수 은퇴까지 고민했지만 이 감독은 포기하지 않았다. 오른쪽 눈이 보이지 않은 지 1년이 지난 후, 그는 보란 듯이 아시안컵 득점왕에 올랐다.이 감독은 조심스럽게 눈 부상 이야기를 꺼냈다.그는 "1987년에 부상을 당했고 지금까지 오른쪽 눈이 보이지 않는다. 당시 선수 생활을 못할 수 있다고 생각해 좌절도 했다. 정말 많이 힘들었고 많은 고민을 했다"고 털어놨다.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 감독이 선택한 방법은 간단했다. 한쪽 눈밖에 보이지 않으니 두 눈 모두 보이는 이들보다 더 많이 노력하면 된다고 확신했다.이 감독은 "다시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고 죽어라 훈련을 했다.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을 커버하기 위해서는 훈련밖에 없었다"며 "공격수다 보니 볼에 대한 감각을 잊지 말아야 했다. 반복 훈련을 하고 집중력을 높이기 위한 훈련도 쉴 새 없이 했다. 남들보다 2배 이상 훈련을 했다"고 말했다.노력은 자신감으로 이어졌다.그는 "처음에는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의식했다. 하지만 반복 훈련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의식하지 않게 됐다. 그리고 자신감이 생겼다"고 덧붙였다.핵심은 노력이 배신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노력은 불가능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다.이 감독은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았지만 기량이 줄어들지 않았다. 대표팀에도 뽑혔고, 다음 해 아시안컵 득점왕도 차지했다"고 힘줘 말했다.최용재 기자 choi.yongjae@joins.com
2018.12.27 06:00